상실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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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말도 죽음이 가르쳐주는 진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진리를 인식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에 있거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심한 충격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인간 삶의 한 과정이다. 하지만, 죽음의 일반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의 죽음은 똑같지 않고, 사별의 경험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한다. 물론, 그 경험에는 유사한 면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경험하는 슬픔의 과정은 다른 사람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알렌 휴 콜 박사는 “나의 슬픔은 나만의 것이고, 당신의 슬픔은 당신만의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슬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 주기 위한 방법으로 “이만하면 됐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고인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이제 일어서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사실 주변 사람들이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하기에 하는 말들이다.

 

 

 

 

최근 애도상담 교육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를 상실한 지 2년쯤 된 한 참가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아직도 많이 슬프고 힘들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매일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어디 전화할 때가 없어서 더 힘들어요. 언젠가 그 번호로 전화를 하니 다른 사람이 받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더 마음이 슬퍼요. 아직도 밤이면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려요. 근데, 사람들이 제가 너무 유별나게 그러는 것 아니냐고. 2년이나 지났는데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과정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마음을 이해해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도록 도왔다. 그러다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제가 보기에는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시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녀는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너무 감사해요. 제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모두가 제가 이상하다고 말했지요...”

 

 

 


상실은 우리의 감정, 인지, 신체, 행동에 영향을 준다. 슬픔이라는 것은 단지 슬픈 마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포함하는 것이며, 신체와 행동에까지 영향을 주는 이유는 상실로 인해 우리 온 몸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애도의 기간이 평균적으로 1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누구나 1년이 지났다고 해서 애도의 과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2년이 지나서 슬픔이 지속된다 해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보통 비탄과 애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상실한 대상과의 관계성, 과거 상실의 경험들, 신앙의 정도, 공동체성, 죽음의 유형, 문화적 차이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애도의 기간에도 차이가 있으며, 슬픔의 강도 또한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잣대로 슬픔을 진단하거나 비교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태도라고 가정하는 많은 것들 때문에 개인의 독특한 경험이 무시 당하게 된다. 이러한 무시는 부당한 것이며, 더 나아가 이미 상처받은 사람에게 더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시인 엘리자베스 제닝스(Elizabeth Jennings)는 상실의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상실은 ”시간이 치료해주지 않는다. 이는 반쪽만 꿰매진 흉터를 남긴다.“고 말한다. 반쪽만 꿰매져 남겨진 흉터, 즉 치유가 불확실하게 남겨진 경우에 잠재되어 있는 고통스러운 상처가 언젠가 다시금 드러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어머니 사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지 못한 사람이 최근 아버지 상실을 경험했다면, 적절히 애도하지 못한 과거의 슬픔이 중복되어 복잡한 애도의 과정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별로 인한 슬픔은 한 번에 완전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만 지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별의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서서히 어루만져 주어야 할 ‘돌봄’의 대상인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현재 겪는 슬픔의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고 하나하나 표현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만나는 기회를 갖는다면 좋은 애도를 위한 한 걸음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슬퍼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이전 상실과 지금 겪는 상실에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상실에 제대로 애도의 과정을 보내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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