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애도와 죽음 성찰
2021.06.16 조회수 : 427

 

 

 

 

코로나 시대에 죽음은 격리된 죽음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의 죽음을 보지도 못하고 돌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죽음을 통보받는다는 사실이다. 작년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야기를 듣는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의 죽음이다. 마지막 돌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죽음을 접하게 되고 신속히 장례식장으로 이동되어 사람들의 적절한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장례가 치러졌다는 이야기다.

 

 

 

 

 

 

 

 

 

애도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작별인사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보게 된다면, 죽음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주로 감추어지거나 억눌리게 되므로 워든(William Worden)이 말하는 애도에 있어 중요한 ‘사별슬픔의 고통을 겪으며 애도작업’을 하는 감정표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코로나 시기의 죽음은 예견된 죽음이면서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러기에 충격과 무감각, 혼란을 느낌과 동시에 죄책감을 비롯하여 해방감을 느끼는 양가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을 잘 다뤄야 건강한 애도의 과정을 보낼 수 있다.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참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애도의 과정을 겪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억눌리고 숨겨진 슬픔은 복잡한 애도(Complicate grief responses)를 겪을 수 있으며, 신체나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기에 코로나를 겪으며 상담 영역에서 애도상담이 더 알려지고 확장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라는 파생적인 진리를 인지하게 된다면, 애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최근 필자가 소장으로 있는 애도심리상담센터에서 코로나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앞서 보낸 사람들을 위한 사별애도 집단상담을 온라인 줌(Zoom)을 활용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3여 년 전에 8회기 집단상담으로 개발되어 다양한 기관에서 실시 된 바 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문상담사들이 익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배우자, 부모, 자녀, 형제자매 집단으로 나누어 5개 집단으로 진행 중이다. 홍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청이 마감되었다. 그만큼 애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집이라고 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먼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전국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좋은 기회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실 호스피스나 병원에서 제공해야 한다. 필자가 미국 호스피스에서 인턴십을 할 때 보면, 호스피스에는 사별돌봄 부서가 별도로 있었다. 병원에서도 사별집단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법에 따라 사별상담이 필수가 되어 있지만, 종합평가에서 의무 횟수인 4회기 만을 진행하는 병원이나 호스피스가 대부분이다. 실상 이러한 사별 돌봄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진행되어오긴 했다. 하지만, 요즘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병동이나 시설에 갈 수가 없다. 물론, 가정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자의 요청은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도적으로 사별애도를 위한 개인상담이나 집단상담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필요한 것은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의 중요성이다. 어딘가 저 멀리 있다고 여겨지는 죽음을 현실의 앞으로 미리 가져와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을 삶과 단절하여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 삶의 부분임을 인식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할 수 있다. 인간 삶의 중요한 단계마다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다. 사람은 대부분 준비 없이 죽음을 맞는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하지만, 준비 없이 죽음을 직면하면 당황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이는 죽어가는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인간이 죽음을 성찰하고, ‘타인’이 아닌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시간의 유한성을 알게 되고, 그 유한성 안에 있는 자신이 얼마나 더 진실하고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지 각성을 하게 될 것이다. 삶의 소중함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더해질 것이다. 이것이 흑사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던 13세기 유럽인들이 깨달은 바이다. 그들은 ‘메멘토 모리’를 외치며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나의 죽음이었고, 언제가 먼 훗날 다가올 죽음이 아닌 언제든지 닥쳐올 실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현재의 삶을 더욱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당시 유럽사회가 겪은 전염병에 버금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죽음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감염과 사망률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유럽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는 높은 사망률로 인해 큰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은 다소 있지만, 사실 그것이 나의 죽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죽음 회피 문화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죽음이 그저 숫자로만 표시될 뿐 실제적으로 ‘나’의 죽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시기에 죽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그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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